"주소 알려주시겠어요?"
갑작스레 주소를 묻는 메시지가 왔다. 시집 필사 모임을 하고 있는 제주 책방의 서점지기님이었다. '좋은 마음'을 보내주려 한다는 메시지였다. 우리는 매일 한 편의 시를 필사하고 감상을 카카오톡으로 나눈다. '매일' 하루 한 편의 시를 나누는 모임인데, 바쁘다는 이유로 며칠을 건너뛰어 겨우겨우 한 편을 올리는 날들이 잦아졌다.
주소를 묻는 메시지가 너무나도 다정하게 느껴져 되려 나는 송구해졌다. 매일 함께 시를 나누자 해놓고 그러지 못했던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필사 모임을 잠시 멈추었다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처럼 나도 잠시 멈추어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지는 못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까 봐. 이 모임이 아니라 매일 밤 책상에 앉아 시를 적어내려보는 시간으로.
저녁을 챙겨 먹고 샤워를 하고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 읽고 있는 시집에서 그날 마음이 가는 시를 골라 필사를 한다. 노트의 오른쪽에는 잘 써지는 펜으로 시를 옮겨 적고, 왼쪽에는 연필로 감상을 적는다. 거나한 평론 같은 게 아니다. 시를 읽고 난 뒤의 감정, 마음, 되살아났던 기억들을 끄적인다.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에 분주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잦아들고 어느새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내가 나를 잘 모른 다는 거, 그건 내가 잘 안다. 제 감정조차 잘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아서 스스로가 섬짓하게 느껴졌던 적도 있다. 시를 읽고 난 뒤, 감상을 적어내려가며 천천히 생각과 감정들을 되짚어보는 시간이 그래서 소중했다. 그렇게 쓰다 보면 모르고 지나쳤던 감정들이 손 끝에 닿는 종이의 질감처럼 겹겹의 낱장들로 만져지는 듯했다. 며칠을 건너뛰어서라도 다시 그 시간을 만나고 싶었다.
며칠 뒤 집으로 작은 소포 꾸러미가 도착했다. 손글씨로 적힌 주소가 정답게 느껴졌다. 포장을 뜯으니 고소한 향내가 났다. 동백오일이었다. 작고 둥근 동백 잎도 하나 엽서와 함께 상자에 담겨 있었다. 가을 동안 숲을 산책하며 주운 동백 씨앗으로 짠 것이라 했다. 숲길을 걸으며 길가에 떨어진 동백 씨앗을 발견하고선 주머니에 한가득 담아 왔을 두 책방지기님의 모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따뜻하고 촉촉한 겨울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동백오일 한 병에 그득히 담겨있었다.
또 다른 엽서에는 시 한 편이 적혀 있었다. 황인숙 시인의 「송년회」라는 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