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쯤으로 기억한다. 바쁜 일과를 마친 후 어딘가를 그냥 평온히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회사에서 멀지 않은,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 생각하기 좋은 한강 뚝섬유원지를 찾았다. 이전 호에서 소개했던 루트들에 내 발걸음을 채웠다. 그렇게 한 걸음씩 걸으며 스스로 하루의 소회를 풀어냈다.
한 10분 지났을까. 핸드폰의 진동이 야심 차게 울렸다. 반가운 이름, 전 직장 동료 미카엘이었다. (꽤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가 나에게 전화를 한 이유는 단지, 그냥 생각이 나서였다. 어찌 이렇게 로맨틱할 수 있는가. 내색은 안 했지만 괜스레 감동하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미카엘은 강릉에서 뛰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본인은 여행을 가면 항상 여행지에서 러닝을 한다고 이야기했다.
‘오?!’ 좋아 보였다.
온몸의 감각으로 여행지를 기억하는 방법은 러닝밖에 없지 않나란 생각이 함께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나름의 다짐 아닌 다짐을 하게 됐다. 나도 앞으로는 새로운 여행지들을 러닝으로 기억해보자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돌아오는 3월에 안식월을 떠난다. 자스민의 안식월 일정을 참고하여, 안식월의 첫날부터 여행지로 달려갈 계획을 세웠다. 약 20일 동안 베트남을 시작으로 체코, 헝가리, 크로아티아에 방문하고 마지막으로 영국 맨체스터에서 챔피언스리그 축구 경기를 보며 여행을 마무리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계획을 세우고 돌아보니 이번 여행지들의 공통점은 ‘야경 맛집’이라는 것이다. 호이안, 프라하, 부다페스트, 두브로브니크에 이르기까지 야경이 멋지기로 그 명성이 자자하다. 이러니 기대감이 더 커질 수밖에.
이번에 안식월을 가게 되면서, 문득 4년 전 유럽 여행을 갔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회사 입사가 결정되고, 나에게는 한 달이라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EPL을 좋아했던 나는 주저 없이 유럽향 티켓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이내 직접 그 곳으로 향했고, 유럽에서의 경험은 지금까지도 소중한 추억들로 간직하고 있다.
약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의 유럽은 어떨까. 변한 부분도 있겠고 여전히 그대로의 모습을 가진 부분도 있겠지. 나는 그 사이에 소소한 것들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버스와 트램 표를 알아보았다면, 지금은 국가별 운전석 위치는 어느 쪽인지를 찾아보고 있다. 기름은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도.
결정적으로 그때의 나는 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즐기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여행지들을 직접 두 발로 뛰어 보려고 한다. 물론, 아침 6시에 일어나야 하는 적잖은 불편함을 감수해야겠지만, 이 수고가 나에게 성취감 내지는 행복감을 불러일으킬 발화점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이번 안식월 여행의 러닝 계획을 세우면서 문득 에어비앤비 광고 캐치프레이즈가 생각났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그리고 나의 여행 계획에 그대로 카피했다.
“여행은 뛰어보는 거야.”
절경 속에서 가쁜 숨을 쉬며 뛰는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p.s 안식월을 다녀올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팀원 분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