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기억에 기대어 작년 가을에도 혼자 여행을 갔다. 또 한 명의 양육자의 눈치를 보며 가족과 함께 하는 주말을 깨고 금-일 2박 3일의 혼자 일정을 통고했다. 내 욕심을 꺼내고 나면 미안해서라도 더 잘 하니까 라며. 눈 질끈 감고 여행 일정을 알렸다. 이번 여행은 사정상 가로수길 초입에서 시작됐다. 토요일 오전 결혼식에 참석해야 했다.
금요일의 가로수길은 너무 북적여서 혼자 있기엔 편하지 않은 곳이었다. 골목을 오르내리며 사람이 적당하게 없고 그러면서도 취향이 대충이라도 맞을 곳을 찾아 전전했다. 겨우 앉은 펍에서는 디스트로이드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지하실 냄새가 났고, 준비성 있게 미리 예약을 걸어둔 식당의 예약 시간은 무려 두 시간 뒤라 난 다시 피자집에 앉아 피자 한 쪽과 맥주를 마셨다. 적당한 곳을 찾으려고 같은 길을 무심한 척 왔다갔다하는 나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이상해보일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이러려고 그 역경(!)을 뚫고 나왔나.
그 이후의 일정도 비슷하게 흘러갔다. 아침에 일어나 결혼식에 얼굴을 비추고 허둥지둥 걷고 또 걸어, DDP를 돌고 CGV에서 에에올을 보니 또 저녁이었다. 혼자 술과 저녁을 해결 할 공간을 찾아 을지로 숙소 주변을 헤매다 안주보다는 음악이 메인인 작은 술집에 앉았다. 음향 시스템은 멋졌지만 와인에 곁들인 떡볶이는 느끼했다. 뱃 속의 감에만 의존해 가장 적절한 먹거리를 찾는 이노카시라 상을 생각하며, 아침 해장국을 찾아 을지로에서 광장시장까지 갔지만 적당한 해장국을 찾지 못 해 결국 광장시장 한 켠에서 잔치국수를 먹으며 혼자 여행을 끝냈다. 결국 작년 혼자 여행은 혼자라는 역할을 수행하느라 오히려 더 지쳤다. 혼자라는 긴장에 재미나 만족보다는 혼자 여행이라는 컨셉만 남았다.
꼭 그렇게까지 가야 해? 라는 질문을 받는다. 정말 나는 왜 굳이 왜 혼자 떠나고 싶은 걸까. ‘꼭 그렇게까지’ 라는 말 뒤에는 ‘내가 너에게 방해 돼?’라는 섭섭함이 묻어 있는 것도 알고 있다.
처음 혼자 여행을 시작한 것은 해방감을 찾아서였는데, 지금은 붕괴를 막기 위한 재난예방 차원이다. 떠나기 직전의 심정은 오래 참았던 숨을 더 이상 참지 못 할 때, 이제는 가야 해 라는 신호가 몸 어딘가에서 느껴질 때와 같다. 나에게 너무 많게 느껴지는 내 역할 사이에서 서서히 파래지는 나에게 숨 쉴 구멍을 주기 위해. 습관적으로 배려하고 물어보고 살피는 내 역할을 벗고,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나를 풀어놔주기 위해. E로 오해 받을 때마다 깜짝 놀라 쓰러지는 내 안의 I를 끄집어 내어 쉬게 해주기 위해.
작년 혼자 여행은 컨셉에만 충실한 빈껍데기 같은 시간이었던 것으로 결론 났지만, 아마 올해도 난 또 혼자 여행을 갈 거다. 작년의 장애 요인을 어떻게서든 더 집요하게 제거하고 성공 필수 요인을 더 다듬어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 거다. 혼커 혼맥 혼와 혼밥 혼잠 다시 혼커로 이어질 혼자 여행이 부담되고 빈껍데기처럼 느껴지더라도, 외로움을 안전하게 느끼려면 이만한 방법이 없다. 외로움을 느끼고 다시 집에 가고 싶게 만들려 굳이 혼자 걷는 여정을 거쳐야 한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듯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니 말이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나와 비슷한 이유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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