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이서 가면 닭볶음탕에 우동 사리까지 야무지게 추가해서 먹곤 하지만, 소박한 인원이 가면 해물떡볶이나, 바지락술찜 등을 먹곤 한다. 기본 반찬은 그때그때 바뀌지만 거의 고정으로 나오는 단무지 무침은 메인 안주가 나오기 전 입맛을 돋워주어 금세 빈 소주병을 만들어 낸다. 말하지 않아도 선호하는 소주의 브랜드를 골라 가져다주시는 사장님의 센스는 ‘아, 내 동네, 내 술집이다.’’와 같은 묘한 안도감을 가져다준다. 특별히 단골이어서 재료를 아끼지 않으신 건지 넘칠듯한 메인 안주는 ‘이 집이 아니면 안 돼’까지는 아니지만 익숙해서 오히려 더 무서운 맛이다. 한옥에나 있을 법한 창문을 열면 고요한 골목길에 울려 퍼지는 잔잔한 백색 소음이 바람을 타고 들어와 마음을 푸근하게 하곤 한다.
지금의 회사는 강남에 있다. 강북에서만 모든 생활을 영위했던 내게 강남은 유난히도 아득한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충무로까지 30분 남짓하던 출퇴근 시간이 강남으로 이직하면서 1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지금이야 서울 내에서 대중교통으로 1시간 내외면 가깝다고 말하지만, 입사 당시에는 게임 캐릭터의 체력이 소모되는 것처럼 출퇴근 시간만으로 에너지가 닳곤 했다. 넓디넓은 도로 양옆으로 빼곡히 늘어선 가로수와 두세 걸음마다 위치한 잘 정돈된 꽃 화분들은 강남의 무채색 건물들 사이에 억지로 욱여넣은 여유같이 느껴졌다. 원래의 내 생활 반경의 전경도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낯섦도 잠시. 어찌 됐든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어느새 고속터미널역의 빈틈없는 인파에 당황하지 않게 되었고, 선정릉이나 삼성, 청담과 같은 내 생활과는 아주 멀던 역 이름과 위치가 익숙해졌다. 모든 게 술잔에 술 따르듯이 익숙해지던 와중에도 이상하게 익숙해지지 않아 어색한 것이 있다면 바로 술집이었다. 충무로에서 낭만을 안주 삼아 술 전성기를 누리던 내게 강남의 술집들은 삭막하기 짝이 없었다. 홀을 바쁘게 돌아다니는 직원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만 가수 이름도 곡 제목도 모르는 아이돌 음악이 술자리 대화 소리보다 더 크게 울려 퍼지는 술집들. 단골 술집을 만들기도 어려울 정도로 짧은 시간 안에 가게가 바뀌어 버리는 강남에는 낭만이 없었다.
그런 나의 공허해진 마음을 채워주는 것은 워크샵이었다. 누군가는 회식이나 워크샵을 좋아하는 게 꼰대 같다 할지라도 내게 팀과의 워크샵은 여유를 찾아, 낭만을 찾아 떠나는 일탈과도 같다. 반나절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아 매번 이틀을 할애해 사사로운 시간을 가지는 것은 요즘 시대 직장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리라. 때문에 마음 맞는 동료들과 삼삼오오 모여 해이해진 채 사무실에서보다 조금 더 나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인 일이다. 회사에서 만나 각자 주어진 일만 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팀은 매번 워크샵을 핑계로 훌쩍 떠난다. 지난주 있었던 백상예술대상의 수상자 단골 소감처럼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적지 않은 횟수의 워크샵들은 너무도 다른 서로를 이해하고 ‘우리가 함께하는 일’을 더 잘 도모하기 위한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결국 그런 순간들이 직장인들의 낭만일지도.
워크샵, 정확히는 워크샵 술자리의 여파로 인해 호시탐탐 팀원들과 술잔 기울일 기회만 찾는 내게 아끼던 술집이 떠오른 것은 어쩌면 낭만을 아는 사람들과 충무로의 낭만을 나누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약 두 달 후면 디스턴스가 1주년을 맞이한다. 회사에서 모인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던 다짐이 벌써 한 바퀴의 계절을 돈 셈이다. 어찌나 회식하기 좋은 핑계인지. 머지않은 날 디스턴스 생일을 핑계삼아 충무로의 조용한 주거래처 골목길로 팀원들을 데려가야지. 강화도에 이어 우리팀의 다음 낭만은 충무로에 있을 테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