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슬 소리와 함께 약 65,000명이 모인 경기장에서 쉽게 승부가 점쳐지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YEAH!”
모두의 예상대로 경기를 시작한 지 1분 만에 AC밀란의 파울로 말디니의 골이 리버풀의 골망을 매몰차게 갈랐다. 너무도 자비 없이 이른 시간이었다. 그렇게 모두의 예상은 점점 확신이 되어갔다. 전반 39분에는 크레스포가 AC밀란의 두 번째 골 소식을 전했다. 약 5분 후 경기의 쐐기를 박듯 경기장의 전광판에는 3:0 스코어가 자리 잡았고, 이내 전반전 종료 휘슬이 울렸다. 리버풀에게는 가혹한 전반이었다. 선수들은 전 세계인의 예상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참혹한 상황을 마주한 채, 라커룸으로 피신을 가듯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You will never walk alone(YNWA, 너는 절대 혼자 걷지 않을 거야)”
리버풀 선수들이 하프타임을 마치고 그라운드에 다시 나설 때였다. 침울한 선수들을 감싸듯, 리버풀의 응원가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더니 곧 경기장 전체에 우레와 같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서사는 천천히 시작되었다. 팬들의 응원가에 답가를 보내듯 리버풀은 선전하기 시작했고 전반전과는 다른 양상이 펼쳐졌다. 후반 9분에 리버풀의 캡틴, 스티븐 제라드의 골이 터졌다.
“Miracles are possible(기적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2분이 지난 후반 11분, 리버풀 스미체르의 중거리 골이 골망을 강타했다. 리버풀 팬들은 흔들리는 AC밀란의 골망처럼 요동쳤고, 리버풀 선수들과 팬들에게서 더 이상 ‘패배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Mircales are possible” 중계진들도 무엇인가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다시 2분 뒤, 캡틴 제라드가 AC밀란의 페널티 박스에서 경기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을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그의 동료인 사비 알론소가 만회골을 넣으며 기적처럼 ‘단 6분’만에 3:3 동률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동률이 아님을 전 세계가 알고 있었다.
그렇게 후반전이 종료되고, 연장전까지 박빙의 승부를 이어간 끝에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불렸다. 그 휘슬은 새로운 승부를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양 팀 선수들은 마지막 승부를 가를 외로운 골대 앞으로 향했다.
‘승부’차기를 넘어선 ‘무언가’
‘기적을 향한 게이지’는 승부차기 선방 횟수와 걸음을 같이 했다.
1) AC밀란의 첫 번째 키커의 슛이 막히고, 이내 리버풀은 골을 넣었다. ( X / O )
2) 두 번째 시도마저 AC밀란에게는 악몽과 같았고, 리버풀은 한걸음 더 달아났다. ( XX / OO )
3) AC 밀란이 반격에 나섰고, 리버풀은 주춤했다. ( XXO / OOX )
4) 두 팀 모두 골망을 흔드는 데 성공했다. ( XXOO / OOXO )
5) 5번째 키커로 발롱도르 수상에 빛나는 세브첸코가 페널티 박스에 들어섰고, 얼마 안 있어 리버풀이 일궈낸 기적을 공표하기라도 하듯 경기장 전체에 휘슬 소리가 울려 퍼졌다. ( XXOOX / OOXO-) 그렇게 약 90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마치 기적과 같이.
“Walk on with hope in your heart
(계속 나아가, 마음에 희망을 품고 나아가, YNWA 중)"
경기가 종료된 후에도 리버풀의 응원가 YNWA 소리는 경기장을 떠나지 않았다. 리버풀 선수들을 포함해, ‘리버풀 전체’가 기적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가슴에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경기에 임했기에 ‘전 세계가 부정했던 기적과 같은 현실’을 만나게 됐다.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스탄불의 기적’은 현대사회에 지친 우리들에게도 메시지를 던진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0:3의 스코어처럼 마치 게임이 끝난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스코어가 아닌, 마음속의 희망을 바라본다면 우리도 일상에서 작은 기적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Walk on with hope in your hear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