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가 되자 서핑샵 마당은 강습을 들으러 온 사람들로 가득 찼다. 코치님은 서핑은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전날의 기억 때문인지 파도가 무서웠다. 어제만큼은 아니지만 오늘도 파도는 거셌다. 상급자 파도라고 했다. 이런 날 초급자들은 깊은 바다의 꿀렁이는 파도를 타기보다는 해변 가까이에서 부서지는 하얀 파도를 타며 자세를 익히는 게 좋다고 했다. 무릎 높이 정도에서 작은 파도를 탄다고 생각하니 전날만큼 무섭지도 않았다.
자신감이 붙으니 조금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 볼 용기가 생겼다. 더군다나 오늘은 혼자도 아니고 봐 줄 사람들도 여럿 있으니 안심이 됐다. 초보 강습은 일찌감치 끝났지만 나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코치님들도 강습이 끝나고 저마다 자유 서핑을 즐겼다. 나도 그 사이에 껴 이리저리 애쓰고 있으니, 코치님들이 그때그때 필요한 팁을 알려줬다.
타기 좋은 파도가 오면 ‘이거 타!’, 그다음엔 ‘오른쪽 보면서 패들링!’, ‘지금 푸쉬업!!’, ‘테이크오프!!!’. 별생각 없이(사실 생각할 틈도 없었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외침을 따라 자세를 취했을 뿐인데, 어느새 내가 보드 위에 선 채로 해변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7초 이상 파도를 타면 ‘뽕 맞는다’고 하던데, 그날 난 제대로 뽕을 맞아버렸다. 7초보다 짧은 시간이었을 수도 있지만 짧았던 그 순간이 나에게는 잠깐의 영원처럼 느껴졌다.
한번은 정말 큰 파도를 타기도 했다. 발끝에서부터 느껴지는 파도의 규모가 다르게 느껴졌다. 각도가 전보다 더 기울어진 게 눈으로도 보였다. 시선 끝에 멀리 해변이 보여야 하는데, 눈앞에 파도의 미끈한 표면이 보였다. 까딱하다가는 이렇게 그대로 처박힐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찰나의 순간, “푸시 업!!!” 뒤쪽에서 코치님의 외침이 들렸다. ‘에라 모르겠다.’ 상체를 들어 올려 팔을 뻗고, 바로 다리를 가져와 일어섰다. 전과 다른 높이감이었다. 마치 산 정상에 오른 느낌이랄까. 얼굴을 스치는 바닷바람이 상쾌했다.
왜 서핑을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라고 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라인업에서 코치님들과 함께 있으니 무섭지가 않았다. 큰 파도가 왔을 때는 부드럽게 파도를 타고 넘겼고, 깊은 바다 위에 떠 있다는 게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발목에 리쉬 거는 걸 깜빡하고 바다 깊숙이 들어간 적이 있다. 리쉬는 내 몸과 보드를 이어주는 연결선이다. 수영을 못 해도 서핑을 탈 수 있는 건 리쉬가 있어서다. 물에 처박혔다가도 떠올라서 보드에 다시 올라타면 되니까. 그런 생명선 같은 리쉬가 내 발목에 채워져 있지 않은 걸 알아챈 순간 나는 그대로 하얗게 질려버렸다.
해변까지 헤엄쳐 나갈 길이 아득했다. 파도는 너무 컸고, 그냥 나가다가는 파도에 뒤집혀버릴 게 뻔했다. 보드와 연결된 리쉬가 없으니 보드는 떠내려갈 게 뻔하고, 헤엄을 못 치는 나는 아마 그대로… 윽! 눈이 질끈 감겼다. 공포가 밀려왔다. 보드에 연결된 리쉬를 잡으려고 손을 보드 테일로 가져다 댔지만 손이 닿지 않았다. 무게 중심이 바뀌자 보드까지 휘청였다.
그때, 멀리 코치님이 보였다. 손짓을 하며 리쉬가 빠졌다고 하얗게 질린 채 소리 질렀다. 코치님은 가만히 있으라고 안심시켜주고선 보드를 타고 헤엄쳐 와 리쉬를 찾아 내 발목에 다시 채워주셨다. 그때의 안도감이란. 하루 동안 바다의 풍경이 얼마나 자주 바뀌었는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