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빅 이벤트’는 무엇이었나 되짚어 보면 반짝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민트색 유니폼을 입고 코트 위를 누볐던 여름, 내 농구 라이프의 가장 큰 경기였던 서울시민리그가 열린 6월이다.
돌핀즈에 들어와 농구를 한 지 1년 정도 됐을 때였나. 서울시민리그가 열리니 출전을 원하는 사람은 신청하라는 코치님의 안내가 있었다. ‘내가 대회는 무슨. 픽업게임도 아니고.’ 무려 시 단위 대회인지라 출전은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2년 정도 하면 그때 나가봐야지.’ 그렇게 마음속으로 혼자 출전 계획을 1년 뒤로 미뤄두고 있었는데, 같이 수업을 듣는 예슬님이 코치님께 문의를 하러 같이 가자고 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그렇게 어쩌다 덜컥 나도 출전 신청을 해버리게 됐다.
대망의 첫 출전일은 6월 25일 일요일. 대회를 앞두고서는 매주 있는 농구 수업에 더해 개인 체력훈련과 슈팅연습까지 해가며 대회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매주 조금씩 훈련강도를 높여 대회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대회가 열리는 시점은 6월 말. 직장인에게 6월이란 상반기를 결산하고 하반기를 준비해야 하는 매우 바쁜 시기다. 매일 퇴근하고 연습을 해도 모자랄 판에 거의 매일 11시가 넘어서야 퇴근을 하는 그야말로 대야근의 시기를 보냈다. 슈팅 연습은커녕 체력부터가 걱정이었다.
그렇게 맞이한 D-Day. 경기가 진행되는 체육관 문을 열었을 땐 앞 조 경기가 한창이었다. 체육관 한 켠에 짐을 내려두고 바닥에 앉아 경기를 구경했다. 쿵쿵쿵쿵. 체육관 바닥의 울림이 전해졌다. 그 소리에 맞춰 내 심장도 쿵쿵쿵쿵. 나도 모르게 점점 긴장됐다.
정확히는 쫄았다. 저 사람들이 오늘 내가 붙어야 하는 사람들인가? 경기를 뛰고 있는 두 팀의 피지컬이 빼빼 마른 내 몸을 더 말라 보이게 했다. 속도는 또 어찌나 빠른지. 게다가 그렇게 빠르게 뛰는데도 누구 하나 숨을 헐떡이는 사람이 없었다. 코트를 몇 번 오가면 금방 입으로 헉헉대고 있는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중에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두 팀의 플레이에 진심으로 감탄하며 경기를 봤다.
앞 조의 경기가 끝나고 이제 우리 차례. 시민리그 예선에서 우리는 총 세 번의 경기를 하는데, 그 중 두 번의 경기가 하루에 다 열렸다. 첫 경기는 정예 멤버들이 나섰다. 그만큼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였다. 결과는 23 대 15. 우리의 승리였다. 시민리그 출전의 값진 첫 승리. 나는 승리가 거의 확정 지어졌을 때 1~2분을 뛰었다. 분명 밖에서 봤을 때는 대형도 착착, 호흡도 착착이어서 나도 그런 플레이를 할 줄 알았는데, 처음 올라 간 코트에 그야말로 눈앞이 하얘졌다. 패스를 받고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 수비를 하면서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 우왕좌왕하다 경기가 끝났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경기. 상대는 경기 전부터 쫄아버렸던 그 팀이었다. 그런데 첫 쿼터부터 내가 나갈 줄이야. 상대팀과 악수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잘 부탁합니다’라고 해버렸다. 역시나 너무 빨랐다. 우리팀이 공격에 실패하면 그들은 재빨리 리바운드를 해 속공을 펼쳤다. 너무 빨라서 거의 혼자 단독으로 질주하는 느낌.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우리팀의 공격 실패 – 상대팀 속공 – 레이업슛 득점의 패턴이 반복됐다. 오늘 경기에서 한 골이라도 넣었으면 좋겠다는 일말의 기대는 열심히 뛰기라도 하자는 다짐으로 바뀌었다. 점수 차는 어마어마하게 벌어졌다. 그런데도 상대팀은 봐주지 않았다. 넘어지고 엎어지면서까지 계속 달렸다. 상대팀이지만 멋있었다. 그렇게 3쿼터, 4쿼터.
경기가 후반으로 흐르면서는 우리팀도 하나 둘 공격 포인트를 잡았다. 공수가 전환되고 상대 진영까지 들어가 내가 왼쪽에서 패스를 받았던 순간, 센터에 있던 주현님과 눈이 마주쳤다. 수비 사이로 바운드 패스를 주면 주현님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패스는 성공했고 그대로 골인! 그때의 쾌감이란! 착-착-착-슛! 경기 막바지 골밑슛 찬스가 났을 때는 거의 성공시켰다. 리바운드해서 슛! 패스 받아서 슛! 정말 있는 힘을 다해 끝까지 뛰었다. 경기 종료 휘슬이 불렸을 땐 거친 내 숨소리가 머리까지 울리고 있었다.
7월 9일까지 총 세 번의 예선 경기를 펼쳤고 우리는 3전 1승 2패를 기록하며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첫 서울시민리그는 그렇게 예선 탈락으로 끝났다.
‘아쉬운가?’라고 물으면 아쉬움은 남지만, ‘후회되나?’라고 되물으면 후회는 없다. 열심히 준비했고 치열하게 뛰었다. 무언가를 이렇게 열정적으로 즐기면서 준비해 본 게 얼마 만이었나. 팀이 모두 하나되어 고군분투하던 시간들. 청춘 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그런 순간들이 올여름 나에게도 있었다. 동료들과 함께 목표를 향해 나아가던 그 시간들이 가장 뜨거웠던 기억으로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