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오기 전까지 그 며칠의 휴일만을 기다리며 버텼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내달려 한참 멀어져서는 핸드폰 따위는 아무데나 던져두고 있어도 상관없는 시간이 오길. 불과 연말 회고를 할 때까지만 해도 ‘올해 참 단단해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한 달여 만에 ‘요즘 얼굴이 안 좋다’는 걱정 어린 인사를 건네받는다.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이 줄어들며 어느샌가 일상의 시간이 흐트러졌다. 매일같이 야근을 하던 시기가 지나고 다시 저녁시간이라는 것을 보낼 수 있게 됐는데, 얼마나 됐다고 그게 낯설어져 버렸다. 잠들기 전까지의 몇 시간. 그 시간 동안 하루 동안의 모든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는 강박이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됐다.
SNS는 아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도피처가 되어줬다. 인스타가 질리면 유튜브, 유튜브가 질리면 다시 또 인스타로. 머리가 멍해질 때까지 그러고 있다 보면 뭔가 스트레스를 털어낸 것만 같았다. 휴식도 인스턴트로. 빠르고 간편하게.
체험수업 시간에 맞춰 요가원에 방문했다. 바닥에 가지런히 펼쳐져 있는 빈 요가 매트를 찾아 자리를 잡았다. 낮은 조도와 잔잔한 음악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깔끔하면서도 감각적인 인테리어, 꽤 고급 브랜드의 요가매트, 새 공간의 냄새. 첫 시작의 긴장과 설렘이 느껴졌다.
수업 시간이 되자 선생님도 맨 앞자리 요가매트 위로 올라오셨다. 인스타그램에서 먼저 본 얼굴. 요가를 처음 해 본 분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나를 포함해 두세 명 정도가 손을 들었다. 대부분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긴장감이 더 느껴졌었나 보다.
처음엔 아기 자세를 하며 긴장을 풀어줬다. 꿇어앉은 자세에서 상체를 숙여 팔을 앞으로 쭉 뻗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낯선 곳에서의 긴장을 풀어줬다. 그리고 이어진 수리야 나마스카라. 산스크리트어로 ‘수리야’는 태양을 ‘나마스카라’는 인사를 뜻한다. 태양을 온몸으로 맞이한다는 의미다. 수리야 나마스카라는 여러 동작으로 이뤄져 있는데, 태양을 맞이한다는 의미여서 그런지 처음 자세는 바르게 선 자세로 시작한다.
두 손을 모아 높이 머리 위로 뻗고 시선은 손끝을 향한다. 단순한 자세인데 몸이 곧게 쭉 펴지며 매트에 닿은 발바닥부터 무릎과 허리, 어깨와 머리까지, 몸의 정렬이 맞춰지는 느낌이 든다. 이후에는 태양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듯 허리를 반으로 굽혀 상체를 툭 떨어뜨린다. 그리고 나서는 기지개를 켜는 강아지 모양의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머리를 들어 올린 코브라 같은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이렇게 여러 동작으로 이루어진 수리야 나마스카라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몸에 더운 기운이 확 돈다. 비로소 몸이 풀린 것이다.
이어지는 전사 자세. 다리를 어깨 너비보다 더 넓게 벌리고 양 팔을 어깨 높이에서 수평이 되게 쭉 편다. 왼쪽 방향으로 얼굴과 왼쪽 발끝을 돌리고 오른쪽 발도 45도 정도 방향을 맞춰준다. 왼쪽 무릎을 90도 정도 기울이고 그대로 유지. 마치 펜싱을 하는 것 같은 자세다. 시선은 손끝 멀리 던진다. 이름처럼 당당하고 전투적인 자세다. 길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 멀리 던진 시선과 꼿꼿한 자세. 떨어졌던 자신감이 다시 올라오는 것만 같다.
요가를 하다 보면 내 몸의 미세한 움직임에 집중해 볼 수 있다. 코로 들어온 숨이 어디까지 들어오는지, 내쉴 때는 또 어떻게 빠져나가는지. 호흡할 때 흉곽이 넓어지는지, 배가 볼록해지는지. 동작을 할 때 어떤 근육에 불편함이 느껴지는지. 그렇게 찬찬히 내 몸을 살펴보고 알아차리면서 스스로를 돌본다.
앉은 자세에서 발뒤꿈치를 모아 다리를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만들고 허리를 숙이는 자세를 할 때였다. 왼쪽 고관절 쪽이, 정확히는 그 안쪽의 근육에서 불편함이 느껴졌다. 오른쪽 고관절은 불편한 느낌 없이 잘 숙여지는데, 왼쪽은 뭔가 낀 듯한 느낌이었다. 그 불편한 느낌은 얼마 전 왼쪽 무릎이 많이 아팠던 것과 왠지 연결돼 있을 것 같았다. 고관절에서 허벅지로 이어져 무릎을 잡아주는 근육의 덩어리가 농구를 하고 난 뒤 잘 풀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오랜만에 요가를 하고 나니 사우나를 한 듯 몸이 개운했다. 호흡에 집중하며 여러 자세를 취하며 몸과 마음이 함께 정돈된 느낌이 들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할 일은 많고. 이렇게 정신 못 차리고 급류에 휩쓸리듯 지내다 일 년이 지나게 될까 봐. 잘 망가져버리는 내가 그러다 다시 회복하는 데에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게 될까 걱정됐었다. 그래서 다시 요가다. 잠시 섬처럼 멈춰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