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앞.
왠지 쪽지에 흘겨 쓴 글씨로 의미심장하게 적었을 것 같은 시간과 장소. 사실 심각할 이유 하나 없는 한가로운 휴일 아침의 일정이다. '안산(지역 이름이 아니고, 정말 산 이름이 안산이다)'을 오를 때면 나는 꼭 여기서 보자고 한다. 수 억년 역사의 무게감과 야트막한 산을 오르는 가벼운 마음이 대조를 이루는 게 재미있달까.
소라와는 전날 저녁 이곳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침 9시에 보자고 한 건 소라다. 소라는 가끔씩 한강에서 만나 농구를 하는 동네 친구다. 우리가 모여 농구를 하는 시간은 보통 저녁 8~9시. 그런 우리에게 아침 9시는 꽤나 낯선 시간이었다. 속으로는 '휴일인데 꼭 출근하는 것 같겠네?'하면서도 흔쾌히 9시에 보자고 답장했다. 이 친구가 이렇게나 아침형 인간이었다니.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인 월요일 아침 9시. 평소 같으면 출근하는 사람들로 분주했을 시간인데, 거리는 '아침'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처럼 상쾌했다. 들이쉬는 숨에 선선한 가을 공기가 머리를 깨웠다. 걷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휴일에 이렇게 아침 시간을 맞아본 적이 언제였던가.
보통은 전날에 한 주의 유희를 몰아서 즐기느라 잠과 술에 취한 채로 주말 아침은 삭제돼버리기 일쑤였다. 나에게 아침은 이성의 시간. 현실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고 싶은 주말에 굳이 이성을 깨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몇 달째. 그러다 보니 오랜만에 맞는 아침 시간이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졌다. 무언가 '아침 시간'이라는 게 있는 건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아침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 대해 상상해 보면, 현관문 앞에 툭 놓인 신문을 들고 들어와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훌훌 넘기며 읽는다거나, 러닝화를 챙겨 신고 집 근처를 가볍게 뛴다던가, 창을 열고 환기를 시킨 후 화분의 마른 흙에 물을 준다던가. 아침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그렇게 건전하고 생산적인 사람일 것 같다.
아침 시간을 보내는 사람의 기분을 상상하다, 문득 이 시간의 공기가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산한 거리와 코 끝으로 들어오는 찬 공기. 감각을 되살려 그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을 더듬으며 걷다가 연남동에서 연희동으로 넘어가는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서 초록불 켜지듯 기억이 떠올랐다.
올해 1월의 토요일 오전 11시. 딱 이런 공기와 시간이었다. 오전 요가 수업을 들으러 다닐 때였다. 아침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지만 12시부터 조금씩 북적이기 시작하는 연남동에서는 그 시간이면 아침이라고 할만하다.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일어나 대충 씻고 롱패딩만 걸친 채 스튜디오로 향했다.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는 아침 공기와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 연남동 골목의 한적함. 집에서 스튜디오까지는 5분 밖에 걸리지 않지만 그 시간 동안 몸과 정신이 조금씩 상쾌하게 깨어났다.
나에게 주말의 아침 시간은 요가가 끝난 후 비로소 완성됐다. 요가 수업이 끝나는 시간은 11시 50분. 그리고 그 시간은 연남동에서 가장 맛있기로 소문난 소금빵이 오븐에서 꺼내지기 10분 전의 시간. 스튜디오에서 빵집까지의 거리는 10분이 조금 안 되는 거리. 완벽한 아침을 완성할 완벽한 타이밍이다. 바삭하게 부서지는 단단한 표면과 혀끝에 닿는 짭쪼름함. 그다음으로 입 안에 퍼지는 눅진하고 촉촉한 버터의 풍미. 그리고 커피. 집으로 돌아와 두 개의 접시 위에 소금빵을 하나씩 올려두고, 커피잔을 꺼내 텀블러에 담아온 커피를 옮겨 담는다.
산에서 내려온 우리는 이제 막 문을 연 카페에서 그날의 첫 번째 손님이 되었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받쳐 들고 테라스 자리에 앉았다. 산을 오르며 깊게 들이쉬고 내쉰 숨에 무언가 씻겨내려간 것인지 몸도 마음도 개운해진 채였다. 쨍하게 내리쬐는 정오의 가을볕마저 산뜻하게 느껴졌다.
오랜만의 산행은 멀어졌던 주말 아침 시간의 기억을 일깨워줬다. 찬 공기를 데워주는 커피 향으로 시작되었던 토요일의 아침. 요가에서 소금빵과 커피로 이어지는 시간이 주말의 시작을 긴 호흡으로 이완시켜주는 것 같아 좋았었다. 주말의 시간까지 촘촘히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는 사람 말고, 그 시간의 사이를 늘려 천천히 충분하게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어서.
공기의 흐름이 바뀌는 이 계절에 다시 그때 그 사람을 내 안에서 깨워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