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소개해준 건 전 직장 동료 미카엘이었다. 그가 회사에 처음 왔을 때 기억이 생생하다. 그는 ‘러닝’을 좋아한다는 나와의 공통점이 있었고 그것은 우리를 금방 가까워질 수 있게끔 만들었다. 여러 번의 식사 이후에 우리는 본격적인 ‘러닝 약속’을 잡았다.
미카엘은 입사 이전부터, 본인이 만든 러닝 크루의 리더를 맡고 있었고 마라톤도 여러 차례 참여했었다고 했다. 나도 오랜 시간 뛰어왔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그에 비해서는 본격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더 기대되는 마음으로 러닝 약속을 잡았다.
저녁 7시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각자의 바쁜 일과를 마무리하고, 서로의 힘든 하루를 달랠 수 있는 돌파구로 나아가려고 했다. 물론 회사와는 매우 가까운 곳이지만 말이다. 우리는 서둘러 짐을 챙기고 뚝섬유원지역으로 향했다. 뚝섬유원지는 청담역에서 한 정거장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러닝 장소에 금방 다다를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본격적으로 몸을 풀었다. 그야말로 본격적이었다. 역시 러닝 크루의 리더는 달랐다. 미카엘한테 러닝 전 스트레칭을 배우고, 내가 그동안 풀어주지 못했던 부위들이 이렇게 많았나 하는 마음에 새삼 놀라기도 했다. 미카엘은 나의 러닝 자세도 고쳐주며 내가 그동안 놓치고 있던 부분들을 하나씩 교정해주었다. 뛰는 걸 배우는 건 또 처음이라, 그야말로 모든 것이 새롭고 또 재밌었다.
우리는 스트레칭을 다 끝내고, 사전에 합의한 대로 5km를 뛰기로 했다. 뚝섬유원지의 좋은 점은, 한강을 벗 삼아 뛸 수 있다는 것과 우측에는 남산, 좌측에는 롯데타워 뷰가 있어 원하는 뷰를 선택하여 뛸 수 있다는 것이다. (한강과 남산/롯데타워가 주는 야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길은 대체로 평지고, 일자로 쭉 뻗어있어 달리는 데도 큰 어려움은 없다.
우리는 남산 방향을 선택해서 5km라는 짧지 않은 거리를 뛰었고, 뛴 발자국만큼 우리의 마음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랄까, 서로 얼만큼 뛰는지 파악하는 탐색전도 있었다. 3km 정도 뛰었을까 서로 힘들다는 말하는 순간 분위기는 더 자연스럽고 편해졌다. (괜한 자존심…) 5km를 다 뛰고, 우리는 청담대교 바로 아래 뚝섬유원지로 돌아왔다. 그리고 맥주 한잔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고자 했다.
그 당시 각자 회사에서 느끼는 어려움, 애환이 있었고 그것들을 털어놓기에 그만한 장소는 없었다. 개운하게 땀을 흘리고,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며, 허심탄회하게 본인의 얘기를 할 수 있는 그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황홀하다. 우리는 그곳에서 5km 러닝을 하기도 했지만, 나름 인생을 경주하는 각자의 삶을 들어보는 시간이 되었던 것도 같다. 미카엘과는 아직까지 연락하며 아주 잘 지내고 있다. 최근에는 본인이 원하는 회사의 희망했던 포지션에 합격하여 새로운 시작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전에 나눴던 이야기들을 돌이켜보며, 좋은 소식을 들으니, 마치 내 일처럼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가끔씩 뚝섬유원지로 혼자 바람 쐬러 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그때에 달리던 향수가 생각난다. 일과 나의 삶을 분리하기엔 다소 거리감이 있는 장소이지만, 일을 하는 공간에서도 내 삶에 들어오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장소였던 것이 나에게는 아직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