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교내 문예창작 대회를 계속 나갔다. 매번 수상자가 되기를 갈망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3년간 단 한번도 입상하지 못했다. 노력이 결과를 만드는 건 거짓말이라 생각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가장 듣고 싶었던 문예창작입문 수업을 들었다. 내 인생 가장 우울했지만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내 글을 본 교수님의 피드백은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내 글은 겉보기만 번드르르했고, 가벼웠다. 교수님의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는 글이 아니었다. 그 시간 동안 배운게 하나 있다. 글은 최대한 담백하고 진실되어야 한다. ‘나’에 가까운 글일수록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크다.
그게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자 글 쓰는 행위의 매력이다. ‘나’에 가까운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조용히 깜빡거리는 커서를 보고 있으면 내 몸과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수 많은 고민과 생각들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활자를 통해 적어내려 가면, 나는 온전한 나와 마주한다. 그 시간이 내가 나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된다. 그렇게 몰두해 계속해서 써내려가다 보면 나의 글은 그 누구의 글보다 사실적이고, 담백해지며, ‘내’가 된다.
최근 <당신의 글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에서 여러 문장들을 얻었지만, 가장 값지다고 생각한 문장은 “나는 오늘도 문장을 쓰며 희망하고 절망하는 법을 배운다” 라는 문장이다. 그렇다. 나는 매번 문장을 쓰면서 희망하고 절망한다. 나의 문장들은 모여 그 순간의 내가 된다. 보고 느낀 것들, 먹은 것들, 지금의 나를 구성한 그 모든 것들을 바라보며 객관적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주관적으로 적어내려간다. 나는 나를 보며 완전하지 못한 나에 대해 절망하기도,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에 희망하기도 하고 내 감정과 생각을 문장에 100% 담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또는 온전히 담아냈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희망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문장은 불완전한 그릇이라고 이야기했다. 나의 금가고 빛이 바랜, 깨진 이 그릇들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이러한 용기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준 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미완성된 글을 완성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