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쩍 약속이 많은 한 주였다. 만 나이로 통일법이 시행돼서 나이는 어려졌다고 해도 체력까지 어려졌을 리는 없다. 보통은 다음날의 일정을 생각해서 정확히는 다음날의 일정을 소화할 내 체력을 생각해서 잇단 약속을 잡지는 않는 편인데, 왜인지 한 주 내내 술 약속이 잡히고 말았다.
오늘 만남은 대학 친구들이었다. 술은 술을 부르는 법. 지난주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문득 떠올라 건넨 안부 연락에 잡힌 약속이었다. 당일 아침까지도 약속 취소의 간절함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지만 마침 장소를 잡자는 친구의 메시지에 단념했다. 어쩔 수 없지. 약속 시간까지 내 체력이 회복되길 바라는 수밖에.
일을 하다 편입해 들어간 대학은 퍽 어색했다. 특히 호그와트처럼 나눠진 기숙사와, 기숙사 안에서 이뤄진 팀끼리 매주 모여 무언가를 하는 시간은 적응하기 쉽지 않은 일 중 하나였다. 게다가 학교는 뭘 할라치면 무조건 셔틀버스를 타고 나가야 할 만큼 외진 곳에 있어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었달까. 어쨌든 중요한 건 기숙사 생활을 하는 동안은 룸메이트들이나 팀과 친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친구들은 첫 번째 팀으로 만났다. 폐쇄적인 학교 분위기에 적응할 만큼 해버린, 일명 고인물이었다. 태생이 인싸일 리 없는 나는 생각보다 빠르게 이들과 친해졌고 함께 자취촌의 술집들을 헤집고 다녔더랬다. 어언 팔 년 전 이야기다.
우리는 성격만큼이나 전공도 달랐다. 팀 제도가 모든 관계의 토대가 되는 학교 문화 덕분인 셈이다. 한 명은 개발자. 어떤 프로그램을 개발한다고 늘 말해주는데도 매번 잊어버린다. (미안.) 같이 일하던 분이 차린 회사에서 어느새 핵심 인력이 되어 밤낮없이 프로그램을 만든다. 또 한 명은 뷰티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스타트업 창업자. 최근 리브랜딩을 시도하며 새롭게 브랜드를 꾸려나가기 바쁘다. 그리고 나는 때로는 기획자로, 때로는 에디터로 무언가를 만들고 시도하는 중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어김없이 가장 늦게 도착해 골목에 들어서니 친구들이 보였다. “여어~” 한마디로 인사를 대신한다. 생각보다 술집 대기가 길어지자 시작된 근황토크 타임은 서로에게 적응할 시간으로 충분했다. 처마 밑에서 애매하게 오는 비를 피하며 셋은 한마음 한뜻으로 외쳤다.
“술 마시기 딱이다.”
30분쯤 후 술집에 들어섰다. 땀이 식기도 전에 이미 정해둔 안주 주문을 마치고 근황토크의 연장선이자 맥락 없는 이야기를 나눈다. 시끌벅적한 소음, 시원하다 못해 춥기까지 한 술집 분위기에 더해진 따끈한 어묵탕은 어제의 과음을 잊기에 충분했다. 안주는 두 개만 시켰을 뿐인데 자꾸만 술상 위에 올려지는 서비스 메뉴는 대기를 각오하고서라도 다음 방문을 기약하게 만들었다. 본인만의 속도대로 술잔을 비워가며 계속해서 떠들어갔다.
술자리 안주 중 하나는 친구의 최근 소개팅 이야기였다. 상대방은 친구와 똑같은 창업자. 다른 점이 있다면 사업이 안정 궤도에 있다는 것이었다. 대표인 본인이 없이도 회사 운영에 무리가 없고, 때문에 도전을 위한 새로운 경험이 필요해 한국에 왔다고 했던가. 칵테일까지 한잔하며 짧지 않은 첫 만남을 가졌다기에 좋은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친구는 그 사람과 모든 대화가 잘 통했지만, 같은 창업자로서 각자 인생의 스테이지가 너무 달라 이후 다시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 브랜드를 시작하려는 자와 이미 브랜드의 성공을 이룬 자. 그렇게 느낄만도 하다.
중간중간 깔깔대며 서로 놀리듯 대화했다. 그러다 진지한 고민을 늘어놓고 또다시 놀리고. 어찌 보면 성격이나 전공만큼 각자의 인생에서 다른 지점에 놓여있는 우리일 텐데, 이 순간만큼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웃고 떠들었다. 셔틀버스를 타고 나가 자주 가던 단골 술집들에서처럼.
길 하나 건너면, 골목 하나 지나면 서로의 집이었던 동네에서 ‘술 한잔?’이라는 메시지를 남기면 대답도 없이 냉큼 만나서 시도 때도 없이 술을 마시곤 했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술잔 앞에서 나눴던 무수한 다독임과 채찍질이 지금 각자의 지점에 이르는 우리를 만들었지 싶다. 그 시간들이 있어서 우리가 너무 다른 지점의 지금에도 편하게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것이리라.
마지막 잔을 비웠다. 적당히 취기가 도는 것이 딱 기분 좋은 정도였다. 밖으로 나와 그제서야 기록용 셀카를 찍었다. 너무 늦지 않은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집으로 향했다.
어쩌다 보니 최근 대학 친구들을 만날 일이 많았다. 만날 때마다 서로 너무 다른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음을 응원하고, 응원받았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그때의 나를 그리워하는 것이라고들 한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내 과거를 그리워할 수 있는 것은 그때의 나를 기억하며 지금의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