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턴스 레터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났다. 점점 1년은 긴 시간이라고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소회랄 것은 없다. 그럼에도 지난 1년 간의 글을 되돌아보니 영화에 등장한 바버샵을 포함해 총 8 개의 바버샵을 소개했다. 정확히는 8 군데 바버샵에서의 나를 소개했다. 물론 1년 동안 8 곳만 방문한 것은 아니다. 방문을 했지만 이야깃거리가 없었던 곳도 있고, 같은 곳을 두 번 이상 방문한 적도 있다. 한곳에 정착하고 싶다는 뉴스레터 소개 글에 담긴 내 소망은 지난 1년 동안 계속 유효했다. 그리고 이제 난 한곳에 정착하려 한다.
수요일, 정확히는 어제 있었던 중요한 보고를 하루 앞둔 화요일이었다. 보고를 준비하면 늘 그렇듯 딱 하루가 아쉽다. 하지만 이제 하루가 더 있었다면 하루 뒤에 똑같이 아쉬워했을 것이고, 이제는 어떻게든 보고가 완성될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인지 1분 1초가 아쉬운 보고 하루 전 저녁 시간에 머리를 깎으러 갔다. 사실 보고서에 대한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머리에라도 자신 있어야 했다.
다행히 저녁 8시 자리가 비어 예약을 하고 7시에 회사에서 나왔다. 그리고 내가 향한 곳은 버킷 햇 바버가 있는 청록바버샵이었다. 그는 역시 볼캡을 쓰고 있었다. 나 역시 볼캡을 쓰고 있었다. 두 우주가 다시 만났다. 하루 종일 모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이발을 시작하기 전 간단한 샴푸를 했다. 무거웠던 머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샴푸를 하면서 빠진 머리카락들 때문일 수 있지만, 역시 행복은 마음이 아닌 몸에 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나에게 물었다.
“하시는 스타일로 할까요?”
오랜만이었다. 나는 지난 1년간의 방황이 끝난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이내 잠이 들었다. 얕게 들려오는 TV 소리, 일정한 주파수의 바리캉 소리, 내 머리를 이리저리 받쳐주는 그의 왼손은 안락했다.
마침 디스턴스 편집장님께서 발행 1주년이 지났으니 주제를 바꾸고 싶으면 바꿔도 좋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다른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4년 전 퇴사를 했을 때처럼 해방감과 두려움이 같이 찾아오지만, 어떻게든 될 것을 알고 있으니 해방감에 조금 더 가깝다.
이발이 끝날 때까지 바버는 나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물론 곤히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을 깨울 이유는 없지만, 눈을 뜨고 있었어도 말을 걸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그의 스타일을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스타일이 마음에 든다. 청록 바버샵은 집과도 가깝다. 바버샵 앞에는 괜찮은 순대국집도 있다. 보고도 무탈히 끝났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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