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할머니가 칼국수 가게를 하셨다. 상호가 칼국수로 끝났는지 만두로 끝났는지 기억이 흐릿하지만 칼국수도 만두도 직접 반죽부터 빚으셨다. 언젠가 할머니처럼 작은 가게를 열고 싶다. 밀가루 반죽부터 직접 만드는 파스타 가게를 생각 중이다. 디스턴스에 공부와 실습 일지를 남겨보려 한다. 제면에 대해 아는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
페투치네 알프레도
Scott ㅣ2023.10.05
무작정 Pasta라는 제목의 책을 한 권 샀다. 단순한 제목과 저자(Missy Robins)의 배경이 마음에 들었다. 저자는 대부분의 우리처럼 이방인 입장에서 파스타를 대하고 습득한 사람이다. 그는 미국 뉴욕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셰프로 이탈리아 본토에서 직접 배우고 터득한 파스타 지식을 400페이지 분량의 책으로 기록했다. 그가 이탈리아에서 배워와 본문에서 슬로건처럼 반복하는 규칙은 ‘Quanto Basta’다. 의미를 번역하면 ‘딱 필요한 만큼(just enough)’이다. 특히 밀가루 반죽을 만들 때 이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데, 기본적인 재료는 정해져 있어도 요리사의 느낌적 느낌과 처한 상황 (온도, 습도 등)에 따라 재료의 배합과 요리 시간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험난한 여정이 예상된다.
가끔 혼자 마트에서 파는 건면으로 흔하디흔한 알리오 에 올리오, 혹은 봉골레 파스타를 만들어 먹기는 했지만, 생면부터 시작한 건 처음이다. 책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책에 처음 나오는 반죽은 Egg Dough. 물 없이 밀가루와 달걀 만으로 만드는 반죽이다. Tipo00라는 매우 곱게 간 밀가루와 달걀을 섞어 만든다. 밀가루의 종류에 대해 설명할 여유는 아직 없다. 책에서 밀가루 500g과 달걀노른자 24개~26개를 준비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다시 바버숍을 검색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다행히 이탈리아에는 달걀 반죽으로 생면을 만들 때 밀가루 100g에 달걀 1개라는 국룰이 있다고 한다. 요리사들은 면의 풍미를 위해 노른자만 쓴다고들 하는데, 주저 없이 국룰을 따랐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달걀 흰자도 함께 쓰는 것이 반죽하는데 훨씬 수월하다.
우선 달걀 한 개를 깨 밀가루 100g 가운데에 쏙 넣는다. 서걱서걱한 느낌이 날 때까지 밀가루와 잘 섞어 준다. 그리고 그릇에서 꺼내 나무 도마 위에서 반죽을 시작한다. 반죽을 받칠 나무 도마는 크면 클수록 좋다고 해 어쩔 식탁을 도마 삼았다. 글루텐이 활성화돼 반죽이 어느 정도 단단해지면 반죽을 아래에서 위로 반 접어 누른 뒤, 90도 회전한 후 다시 반으로 접어 누르기를 반복한다. 이를 5분에서 10분 정도 반복하면 사진처럼 귀엽고 탱글 한 반죽이 나온다. 물론 중간중간 나를 의심하고 저자도 의심하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에는 사진을 찍을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반죽이 다 되면 반죽 겉면에 밀가루를 흩뿌리고 30분간 냉장고에 식혔다 사용한다.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모른다. 아마 찰기를 조금 굳혀야 조형이 조금 더 쉬워서 일 것 같다. 그리고 제면기를 통해 면을 뽑는데 사실 뽑는다기보다는 세절기처럼 톱니 같은 날이 돌면서 일정한 굵기로 반죽을 잘라낸다. 제면기 역시 저자가 추천한 가정용 제면기 Imperia 150을 구매했다. 제면기는 물로 세척하면 부식 되기 쉽다. 때문에 개봉 후 처음 사용하기 전에 밀가루와 물로 빚은 ‘세척용 반죽’을 한 번 넣어야 한다. 먼저 식탁에 제면기를 고정한다. 그리고 밀대로 반죽을 살짝 펴준다. 제면기 롤러 부분에 반죽을 넣고 동시에 롤러 손잡이를 돌리면 반죽이 늘어난다. 두께는 크랭크를 돌려서 맞추며 6단계로 조절이 가능하다. 한때는 혁신적이었겠지만 굉장히 아날로그 하다. 반죽에서 더 이상 철 가루가 묻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반복한 후, 면을 뽑는 부분으로 옮겨 또 철가루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계속 면을 뽑고 또 뽑는다. 면을 뽑을 때도 손잡이를 돌려 날을 회전시키는 방식을 사용한다.
세척 반죽으로 연습을 먼저 해봐서인지 달걀 반죽 면은 꽤 괜찮게 나온 듯하다. 처음 만들어본 생면으로 만들 요리는 페투치니 알프레도인데, 사실 책에도 없고 이탈리아에도 없는 레시피다. 적어도 우리가 흔히 접해온 크림 형태의 알프레도 소스는 그렇다. 페투치니 알프레도는 본래 1908년 알프레도라는 로마의 한 셰프가 출산을 마친 아내를 위해 버터와 파마산 치즈로만 만든 레시피였다고 한다. 아내의 마음에 들었던 이 레시피가 결국 레스토랑 메뉴로 올라간 후 미국 할리우드 스타의 입소문을 통해 미국으로 넘어가 현재 우리가 접하는 알프레도 소스가 되었다고 한다. 오히려 이탈리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이 레시피를 선택한 이유는 파마산 치즈만 사면 됐기 때문이다. 버터는 집에 있었다.
생면은 건면과 달리 3~4분 정도만 삶으면 익는다. 그동안 파마산 치즈 30g를 열심히 강판에 간다. 면이 익으면 물에서 꺼내어 버터 30g을 넣어 버무린다. 면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끓는 냄비 위에 그릇을 얹힌 상태에서 버무리는 요리사들도 있는데, 정신없던 당시 그조차 복잡해 보여 약불을 켜 놓고 버무렸다. 버터가 면 사이사이에 잘 녹아들면 그 위로 파마산 치즈를 뿌리고 만타카레를 해준다. 만타카레는 수분과 유분을 강제로 섞는 과정을 뜻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회에 다루도록 하겠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정신이 없다.
생면을 조심스럽게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파마산 치즈를 한 번 더 뿌려준다. 깊은 한숨 뒤 한 입을 먹어보았다. 오, 맛있다. 밀가루와의 전쟁을 한바탕 치른 후여서인지 꽤 괜찮았다. 달걀의 고소한 맛이 진하게 올라왔다. 그리고 다섯 입 후부터 김치 생각이 났다. 하지만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냉장고 문은 열지 않았다. 결국 한 젓갈(포크)을 남기고 먹는 것을 포기했다. 파스타에 졌다. 왜 그들의 식탁 위에 와인이 항상 놓여 있는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