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술>에서 김혼비 작가는 말했다. “‘오늘의 술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건 그나마도 ‘어제 마신 술’밖에 없다”고.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그러나 어제 마신 사람일지라도 오늘의 술을 피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오늘 약속이 있는 사람.
분기별로 만나는 친구들과 평소와는 다르게 2차까지 달리고 말았다. 무슨 정신으로 집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집에 잘 도착했으니 그걸로 되었다. 갑자기 잡힌 외부 미팅에 해장할 틈도 없이 일정을 소화했다. 미팅이 끝나자마자 용산역으로 달려갔다. 빠듯한 기차 시간에 땀이 절로 났지만 어쩐지 술이 깨는 것도 같았다. 오늘의 술을 맞이할 준비가 됐다.
동생 생일 겸 엄마의 소환으로 간만에 고향행이다. 명절에도 딱히 이동하는 편이 아니라 이런 핑계라도 있어야 겨우 가는 고향이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를 잡아 집에서는 다소 먼 동네의 한 가게로 향한다. 어릴 때부터 우동을 좋아하던 동생은 작년에 우동 가게를 열었다. 음식계의 성덕인가 싶다가도 어릴 적 슈퍼를 꾸리는 엄마, 아빠의 모습이 때때로 겹쳐 보이는 걸 보면 영락없는 자영업자 같기도 하다. 9시쯤 동생 가게에 손님이 빠지고 나면 그때부터는 가게는 우리만의 술집으로 변한다. 엄마랑 동생 친구까지 합세해서 먹고 싶은 음식도 잔뜩 시키고, 양손 가득 술도 사 왔다. 주방을 마주 보고 있는 기다란 자리에 한 줄로 앉아서는 술잔을 기울인다.
중학생 때부터 동생은 학교 기숙사에서 지냈다. 마주칠 기회조차 적었던 청소년 시절을 보낸 덕에 성인이 되어서도 데면데면했던 우리를 다시 이어준 건 술이었다. 술 좋아하는 엄마, 아빠 밑에서 자랐으니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지도. 갓 상경해 서울살이에 적응하지 못해 주말마다 엄마네로 향하던 시절, 이따금씩 동생과 술을 마셨다. 항상 고작 세 살 많은 누나의 잔소리로 끝나곤 했지만,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할 것 같던 치기 어린 20대들의 대화는 매번 진지했다. 어릴 적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동네 술집에 들어설 수 있다는, 이토록 늦은 시간까지 술을 이만큼이나 마실 수 있다는 쾌감은 덤이었다.
가끔 내 친구들이나 동생 친구들과도 어울리기도 했다. 너는 또 언제 이렇게 커서 술을 마시니, 누나보다는 잘 마실거예요, 하하호호 가벼운 농담이 오가는 술자리는 마냥 즐거웠다. 그마저도 동생이 다른 지역으로 취직을 하며 어려워지긴 했지만. 또 가끔은 동생이 서울에 오기도 했다. 서울에서는 대전에서처럼 운전할 수가 없다며 푸념을 늘어놓으면서도 굳이 사서 잔소리를 들으러 와서는 술을 마시고 갔다. 중, 고등학생 시절 운동이 전부였던 동생답게 시즌이 진행 중인 온갖 스포츠 이야기도 하고, 네가 없던 시절 엄마, 아빠와 지냈던 나의 생활은 어땠는지 힘듦을 토로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가 없던 빈 시간을 술로 채워나갔다.
다음날 가게에 도착하니 가게가 손님으로 가득했다. 주방 쪽을 바라보니 어제 마신 술을 가까스로 이겨내고 있는 동생의 모습이 보인다. 한 술 하던 놈 앞에서도 세월은 야속한 법이다. 해장 커피를 사다 주고 나니 손님들이 얼추 빠졌다. 빈자리에 앉아 공짜 우동 한 그릇으로 속을 달랬다. 아직 아무것도 넘어가지 않는다며 애꿎은 커피만 들이마시던 동생은 오늘도 술 약속이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마신 사람일지라도 오늘의 술을 피할 수 없는 사람, 오늘 약속이 있는 사람. 그 누나에 그 동생이다.
한참을 가게에 머물다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고향에서 가족들과 있다 고양이와 둘이 사는 집으로 돌아오면 왜인지 갑자기 어른이 된 기분이다. 가게 영업이 끝나고 동생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오늘의 술자리로 향하는 길에 잠깐 걸었다며, 먼 길 오가느라 고생했다는 동생의 말에 삐쭉이처럼 술 좀 적당히 마시라는 잔소리를 해버리고 말았다. 아차차, 그래도 끊기 전에 이 말은 해야지.
“생일 축하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