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이야기하자면, 아주 먼 시절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승학체육공원이 생길 것이라는 공지가 표지판 형태로 이곳저곳 설치됐었다. 인프라, 부동산에 아무런 지식이 없었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기대를 했던 때가 생각난다. ‘승학체육공원’은 초등학교 등하교길에 위치하고 있었고, 학교를 오갈 때마다 공사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승학체육공원은 이내 주민들의 삶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수많은 건강한 발자국들이 남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사실 이곳을 ‘달리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중학교에 진학하며 등하굣길이 달라지고, 또 공원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방문이 어려워졌다. 그러다 4년 전, 성인이 된 지 한참 지난 후에 다시 공원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제법 성장한 모습으로 공원과 조우하게 되었다. 2021년이었다. 승학체육공원 기록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별다른 계기는 없었다. 그냥 달리는 것이 좋았고, 집 근처에 잘 정돈된 뛰기 좋은 트랙이 있었을 뿐이다.
물론 재미난 이유가 하나 있긴 했다. 앞서 말했듯, 수많은 주민들이 찾는 공간으로 동창 친구들, 교회 식구들, 단골 식당의 사장님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반갑게 만날 수 있는 곳임과 동시에, 만나지 못하더라도 공원에 간다면 누군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분 좋은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기에 다시 찾게 된 것이 아닌가란 생각도 든다.
승학체육공원은 나에게 기록 달리기를 알게 해준 곳이다. 3km, 5km, 10km 다양하게 뛰었고 매번 기록을 재며 뛰었다. 기록을 재며 뛴 이유도 별다른 계기는 없다. 왠지, 트랙 위에서는 기록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주변에 마땅히 둘러볼 것도 없었고, 고도의 차이도 없고 계속해서 같은 공간을 돌기 때문에 재미 요소를 줄 만한 것이 시간을 단축하는 정도였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전 기록보다 더 빠른 페이스, 이전 기록 대비 달리기의 강도 등을 비교해보며 스스로 재미를 찾으려 했다.
트랙 달리기는 일반적으로 출발점과 도착점이 정해져 있는 달리기와는 사뭇 다르다. 공간이 동일하고 목표 바퀴 수를 채우며 키로 수를 줄여가는 형태이기 때문에 자신의 페이스에 더 집중하게 된다. 물론 피로감도 더하다. 이 트랙에서 뛰는 3km, 5km, 10km는 순서대로 6+½바퀴, 11+ ¼바퀴, 21+½바퀴였다. 트랙 달리기는 그야말로 ‘자기와의 싸움’이다. 한 바퀴 한 바퀴를 돌아도 여전히 많은 바퀴 수가 남아있다. 공간은 똑같다, 아무리 달려도. 육체적인 것보다도 정신적인 각성이 필요하다. 1km를 달성할 때마다, ‘그만 뛰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자기 합리화를 이겨내야만 하며, 마치 선과 악이 펼쳐지는 치열한 싸움을 치러야만 한다.
그렇기에, 트랙 달리기는 특히 우리의 인생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분명 삶의 순간순간마다 어려운 상황들이 닥치고, 그것을 포기하고 놔버리고 싶은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는 계속해서 머릿속 치열한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3km, 5km, 10km까지 차근차근 달려 완주할 것인지, 호흡이 가빠지는 단 1-2km에서 만족할 것인지와 같이 말이다.
나는 이러한 정신적인 싸움을 하면서, 일종의 힐링을 얻었다. 달리는 상황은 나를 극한으로 몰고 가며 힘이 들지만, 최종 바퀴를 앞둔 상황에 도달하게 되면 마지막 스퍼트를 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초반 페이스와 같이 빠른 페이스를 낸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목표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기에 가능한 것일 것이다.
여러가지 개인적인 일들로 어려움이 있을 때, 나는 트랙 달리기를 떠올리곤 한다. 처음과 끝이 분명히 정해져 있으며, 물론 그 중간 과정은 치열하고 힘들고 어렵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내 스스로에게 집중해서 ‘끝까지’ 달리게 된다면, 목표를 맞이하게 된다.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경험해 본 자만 알리라.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트랙 달리기는 나에게 달리기 이상의 무언가로 다가온다. 매 순간 인생을 경험하는 소중한 순간이기에,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다시 트랙의 스타트 라인에 서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