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바웃 타임(About time)>에서 주인공의 수많은 명대사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바로 이것. 아, 그 전에, 오해하지 않길. 나는 오늘 자스민의 중고영화에서처럼 영화가 아니라 어김없이 술 얘기를 할 예정이니.
“우리는 모두 시간을 여행하고 있어, 삶의 매 순간을 말야. (We are all traveling through time together, every day of our lives.)”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특별한 날’만 특별하게 보내지 않고 매일을 특별하게 보내야겠다 다짐했던 때가. 그리고 한 해에 하루뿐인 생일만 특별하게 보내는 게 아니라, 매일을 그냥 생일처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더랬다. 올해도 어김없었다. 생일의 가장 큰 목표는 무던하게 하루를 보내고, 집에 가서 또 하루를 잘 살았음을 격려하며 평온하게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생은 언제나 계획하는 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더웠던 7월 마지막 주의 어느 날. 지난했던 프로젝트의 마지막 행사가 한 주 앞으로 다가와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또 다른 프로젝트에서는 새롭고 낯선 업무를 시작해야만 했고, 또 다른 프로젝트에서는 조율할 수 없는 급한 업무 요청이 들어왔다.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는 대행사 AE라지만 ‘와, 이거 진짜 감당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업무가 밀려들어 오는 기분이었다. 입사 이래로 쉽지 않은 프로젝트를 맡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었는데 동시다발적으로 내가 핸들링할 수 없는 일들이 휘몰아치니 무언가에 압도당하는 듯싶었다.
그도 그럴만했다. 유난히 버거운 여름이었다. 사람에게 100이라는 한계 게이지가 있다면 늘 90 정도가 찰랑찰랑 채워져 있는 것 같은 기분, 그래서 사소한 일이라도 금방 100에 도달해버리고 마는.
다른 날과 다름없이 무난한 생일을 보내고 싶었을 뿐인데, 오히려 더 최악으로 치닫는 것 같아 억울했다. 사무실에 앉아 심호흡도 하고 어차피 다 지나갈 거라고 중얼거리기도 하면서 침착을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다. 그러다 참을 수 없어 친구한테 힘들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더니 다짜고짜 언제 퇴근하냐고 묻더니, 이 상태로 집에 들여보낼 순 없다며 나를 불러내는 것이 아닌가.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오히려 술자리를 피하는 편인데 이미 꿈꾸던 고요한 생일도 물 건너갔겠다, 잠깐의 고민 후에 꽤나 무거운 퇴근길에 나섰다.
친구가 맛있는 안주랑 술을 먹자며 불러낸 술집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네에 있는 이자카야였다. ‘쿠로’라는 이 술집은 깔끔한 분위기와 분위기에 맞는 조명, 그리고 적당한 소음과 꽤 맛있는 안주가 있어 한 번 가보고 다음에 와서 시도할 메뉴도 정했었다. 이미 자리를 잡은 친구와 만나자마자 안주를 집기도 전에 술잔을 부딪쳤다. 빈속에 들어간 술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제야 눈앞에 달큼한 토마토 나베와 유자 소스 덕에 상큼한 소고기 타다끼가 눈에 들어왔다. |